최근 2010년 이전의 메이플스토리를 그대로 재현해 낸 '메이플랜드'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넥슨에서 직접 개발한 것도 아니고, 수익을 목적에 둔 게임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메이플랜드'의 인기는 '추억 마케팅' 측면의 인사이트를 주는 것 같다. 이번 <주관적인 마케팅 인사이트>에서는 게임계에서는 추억을 어떻게 팔고 있는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1. 처음 출시했을 때 그대로, 게임계 추억팔이의 시작 '와우 클래식'
게임 업계를 들여다보면, 특정 게임이 오래 서비스되고 점점 '고여 갈 때' 그 게임의 옛날 버전에 대한 수요가 발생한다. 게임사 블리자드의 역작 와우(World of Warcraft)는 2019년, 서비스 시작 15주년을 맞이해 처음 게임이 출시했을 당시의 서버를 그대로 복각한 '와우 클래식'을 출시했다. 기존 와우 팬들은 열광했다. "내가 15년 전 미쳐있었던 게임이 그대로 재출시한다니" 게임의 옛날 버전이 오히려 현재 서비스하고 있는 본 게임보다 더욱 이슈화되고, 높은 화제성을 이끌었다.
그 이후부터 어떤 게임이 인기를 끌지 못하거나 쇠락하는 분위기를 겪을 때, 이 해당 게임 이름 뒤에 '클래식'을 붙이는 일종의 밈이 생겨났다. 예시를 들어보자면, "하스스톤 요즘 인기가 없는데, 하스스톤 클래식이나 출시해라", "던전앤파이터 옛날 감성이 좋았는데, 던전앤파이터 클래식 안 나오나?" 이런 식.(예시는 그냥 필자가 아는 게임 이름을 붙인 것뿐 특정 의도는 없다.) 이들이 옛날 게임을 복각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1) 옛날 게임에 대한 향수 2) 지금 게임에 대한 불만. 그리고 대부분 지금 게임이 잘 안 될 때 복각 버전의 수요가 늘어난다.
2. 메이플스토리가 비상이라고? 메이플랜드로 도망치면 그만이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 엄청난 인기를 보이는 것이 바로 '메이플랜드(Mapleland)'이다. '메이플랜드'는 말하자면 '메이플 클래식'이다. 2010년, 메이플스토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던 '빅뱅' 패치 이전의 메이플스토리를 그대로 재현했다. 기존에도 이러한 형태의 불법 서버가 있었으나, 이번 메이플랜드는 무려 '합법'이다. 넥슨에서 메이플스토리의 리소스를 활용해 유저들이 원하는 게임을 제작할 수 있도록 '메이플스토리 월드'라는 플랫폼을 열어줬고, 그 플랫폼에서 여러 개발자들이 모여 합법적으로 옛날 메이플스토리를 되살린 것이 바로 '메이플랜드'다.
'메이플랜드'는 10월에 공개되었지만, 작년 12월부터 1월 새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12월에 갑자기 치솟는 검색량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모든 메이플스토리 방송인들은 하나같이 메이플랜드와 관련된 콘텐츠를 찍어내고 있고, 메이플스토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시청자들의 알고리즘은 메이플랜드로 가득 찼다. 10월에 공개된 게임이 지금에 와서 트렌드로 떠오른 이유는 역설적으로 메이플스토리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메이플스토리에는 작년 말부터 여러 부정적인 이슈가 터져 나왔다. 그 정점은 올해 초, 현금으로 구입 가능한 뽑기형 상품의 확률을 조작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고지하지 않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16억 과징금 처리를 받은 '확률 조작' 이슈이다. 안 그래도 메이플스토리의 서비스에 대한 유저들의 불만이 끓어오르는 시점에, 결정적으로 유저를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인 사실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메이플스토리 유저들, 특히 스트리머들은 더 이상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할 수 없게 돼버렸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인 게임을 해?'라는 식의 반응이 터져 나온 것이다. 메이플스토리 유저의 탈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옛날 메이플스토리'인 '메이플랜드'였다. 그 시절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넥슨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메이플랜드'는 지금의 메이플스토리에 회의감을 느낀 유저들의 대피처가 된 것이다.
3. '불편함'을 넘는 '향수'
그 시절 메이플스토리는 '불편함'과 '불친절함' 그 자체다. 현재 기준 이벤트를 통해 15분 만에 본인 캐릭터의 레벨을 200까지 올릴 수 있는데 반해, 메이플랜드에서는 하루를 꼬박 다 투자해도 30 레밸을 달성할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 시스템은 불편하고,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퀄리티는 낮으며, 불합리한 부분도 많다. 앞서 언급한 블리자드의 '와우(World of Warcraft) 클래식'도 마찬가지이다. 오래 운영하면서 고치고 개선해 왔던 불편함들이 개선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근데도 왜 인기가 많을까?
답은 역시 '추억'에 있다. 메이플스토리는 작년에 서비스 20주년을 맞이했다. 메이플스토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갓 태어난 아기가, 지금은 스무 살 성인이다. 메이플스토리 초창기에 부모님이 정해둔 하루 한 시간 게임 플레이 시간 때문에 30 레벨을 채 달성하지 못했던 초등학생이, 지금은 경제적, 시간적 요소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성인이 된 것이다. 그때 달성하지 못했던 레벨도 마음만 먹으면 시간을 갈아 넣어 달성할 수 있다. 얻지 못했던 아이템도 현금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지금 메이플스토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복잡한 구조, 현금 결제 의존도 등에서 벗어나, 그 시절 추억에 빠져 얻지 못했던 것들을 획득하고 만족감을 얻는다. 이것이 메이플랜드의 향수다. '내가 못 얻었던 것을 지금은 얻을 수 있다.', '복잡함에서 벗어나 게임의 초기 개발 의도가 담긴 단순함을 즐길 수 있다'. 메이플랜드의 그래픽과 이팩트가 조잡하고, 많은 것이 불편함에도 인기를 몰고 있는 이유다.
4. 추억은 돈이 된다
이런 현상은 비단 게임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그라들 듯 사그라들지 않는 '레트로 열풍'은 추억이 돈이 된다는 것을 그 어느 것보다도 잘 보여준다. 범위가 넓은 레트로 트렌드 중에서도 필자가 집중한 부분은 '옛날에 가지고 싶었지만 결국 갖지 못했던 기억'을 자극하는 '지금은 어른이니까 다 살 수 있어' 마케팅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경제적인 주체가 되지 못했을 시절에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물건'을 지금에 와서 다시 판매했을 때, 그 자체로 소비자의 니즈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스니커즈 씬에서 바로 '리셀 플랫폼'이 일부분 이러한 니즈를 자극한다. 몇십 년 전에 내가 살 수 없을 때 판매한 스니커즈를, 크림(KREAM)이나 솔드아웃(Soldout)에서 살 수 있다. 내가 오래도록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그 물건을, 아무리 오래된 한정판이더라도 나한테 그 프리미엄을 지불할 능력만 있다면 구입할 수 있다. 게임 업계에서는 예전에 팔았던 아바타 제품을 복각해서 재판매하거나 앞서 말한 것처럼 '클래식', 즉 예전 버전의 게임을 아예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든다. 캐릭터나 IP를 활용하는 장난감이 옛날 그대로 재현되어 나오기도 한다. 일례로 어릴 적 누구나 가지고 싶어 했던 디지몬 IP를 활용한 게임기 '디지바이스'는 최근까지도 흑백 화면으로 출시되었다. 물론 옛날 감성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발전이 없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패션 업계에서는 수십 년 전의 제품을 그 모양과 소재, 로고까지 재현해 복각하기도 한다. 일례로 파타고니아는 50주년을 맞이해 파타고니아의 대표 제품을 소재를 바꾸어 내놨다. 로고는 리뉴얼 이전 로고를 사용해 빈티지한 감성을 자극했다.
메이플랜드의 대흥행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이런 것이다. 기술적으로 뒤처졌어도, 디자인이 선명하지 않고 퀄리티가 낮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편해도,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거대한 추억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면, 팔린다. 대중은 얼마나 새로운 기술을 사용했는지, 얼마나 트렌디한 제품인지를 보기 이전에 추억을 구매하곤 한다.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이라면 더더욱. 과거 캐릭터 IP를 활용한 마케팅, 오래된 브랜드의 레트로 마케팅에 있어서 마케터는 단순히 레트로면 다 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 같다. 어떤 것들을 그때 소비자들이 가지고 싶었는지,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추억은 무엇인지, 소비자의 추억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적했을 때, 더욱 효과적인 마케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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